프랑스 대혁명에 반대한 사람들 └세계사의 장

여러분은 프랑스 혁명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입니까?

 

과자쳐드셈 황후와 칼슘첨가제 부대장



소생의 경우는 소싯적에 방영한 만화영화 때문에 프랑스 대혁명 하면 저 두 처자가 떠오르곤 합니다.(한 명은 가상의 인물)

만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마지막회에 오스칼의 부하였던 아란이 말합니다.


"오스칼과 앙드레가 혁명 뒤의 꼬라지를 안 보고 죽은 게 천만 다행이야..."
  


아란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뒤집어지고, 타도대상이었던 왕정이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 될 거라 믿었습니다만...

실제로 대혁명은 혼란스런 지옥의 문을 연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역사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자유당만 박살내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등장한 나폴레옹 숭배자



일은 터트렸으나 수습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의 수습이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불합리한 제도상의 문제는 이미 박살이 났으니 상관없다지만, 왕조시대부터 개판이 된 재정과 경제(왕족들의 흥청망청과 미국독립전쟁 참견), 그리고 악화된 대외관계(주변국이 다 왕정!)와 약해진 군사력(대부분의 장군과 지휘관들이 튀었음!)...

불행 끝 행복 시작이 될 줄 알았던 사람들은 대략 개판 오분 전이 된 상황에 경악하며 불만을 쏟아냈기에 혁명정부는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파리의 혁명정부를 당혹하게 만드는 것은 지방의 왕당파 세력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만화 주인공인 오스칼같은 귀족 출신 혁명가들(EX 라파예트)에 대해서는 대체로 알고 있지만, 왕당파농민의 반혁명 항거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튼 소리...


칼날 양처럼 의심하실 분들이 계실 지 모르겠지만, 저 시절에 혁명한다니까 다들 앗싸 조쿠나~ 한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보수적인 사람들도 꽤 있었고, 루이16세에 대한 처벌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죠.

그래서 루이16세가 단두대에서 댕강했을 때 일이 매우 커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방데 반란'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멘, 앙주, 부르타뉴, 푸아투 등이 있는 프랑스 서부 방데 지역은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는 18세기에 가톨릭을 신봉하는 농민들의 영세경영과 소작제가 이 지역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고래로부터 이어온 강력한 가부장제가 잔존하였고, 토지소유자는 모두 소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대의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를 위해 귀족과 농민들과의 사이에는 보수적 연대성이 이루어져 있었지요.
다시 말해 수탈과 압제라는 단어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귀족과 농민이 사이 좋은 동네였습니다.


 

파리의 국민의회가 한참 혁명의 뒷수습을 하고 있을 쯤, 방대 지역은 카톨릭틱한 반혁명 분위기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이 지역이 결국 폭발한 게 1793년 루이16세의 처형 때문이었습니다.  

보자보자 하다가 도저히 이 동네 사람들이 두고 볼 수 없는 일이 터진 거죠.

이 동네 분위기도 모르고 중앙에서는 방데 지역에 강제징병제를 내렸습니다.(외국과의 전쟁으로 병력이 쪼달리는 상태였지요.)
그러자 동년 3월, 방데 사람들은 중앙의 명령에 '즐!'을 외치고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죠.

농민들과 그들의 지주들은 갖고 있는 무기를 다 가져와서 무장을 하고 프랑스 서부 지역을 완전 장악해 버렸습니다.
이에 혁명정부는 너무나도 당황했죠. 프랑스 서부 지역은 전통적인 적대국 영국과 매우 가까운 지역이었으니까요.

혁명정부는 서둘러 진압군을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처참할 정도로 박살이 나고 말았죠.(이 시기 프랑스군이 무척 허약했습니다)
 


국내외로 어려움을 겪던 혁명정부는 어떻게든 방데 사람들을 타이르려 노력했지만, 이들 왕당파 세력은 전혀 수그러들 줄을 몰랐지요.
결국 열받은 로베스피에르는...

야이 반란군 놈의 시키들아! 너희들 거기서 기다려! 내 포도탄으로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어!

(이미지 출처 : MBC '제5공화국')

로베스피에르의 '청소'명령에 오슈장군을 중심으로 한 진압군(나폴레옹도 끼여 있었죠.-ㅅ-)이 방데 지역으로 들어가 무차별 학살전을 벌였습니다.

반란군 조직을 철저히 섬멸시킨 건 물론이요, 가담하지 않은 농민들과 귀족, 성직자... 심지어 여자, 아이들까지 눈에 띄는 대로 족족 잡아 죽였습니다. 학살된 숫자만 해도 대략 25~30만을 헤아렸지요.

하지만 로베스피에르와 살벌하기로 소문난 자코벵 패거리들은 이에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군이나 정부조직 내부에 있는
방데 출신 인사들까지 죄다 숙청해 버렸습니다.(대략 크메르 루주의 선배들...)

하지만 뿌리 뽑았다 싶었던 방데의 왕당파 세력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수차례 왕당파 세력이 궐기하였고, 1831~1832년에는 부르봉왕가를 지지하며 대대적인 소란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썩은 부위라 생각하던 곳을 잘라내 프랑스 전역을 혁명으로 대동단결하려 했던 자코벵은 이후 몰락하기 시작합니다.(아니, 지하로 숨어들었다는 게 맞겠군요.)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냈던
로베스피에르도 결국 단두대 올라 목이 잘렸죠.(업보일까요?)

이후에도 혁명의 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혼란속에서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있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곧 그들의 앞에 나타납니다.

후대에 구미 촌놈에 영향을 끼친 코르시카 촌놈

나폴레옹의 등장은 잠시 동안 프랑스에 안정과 번영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독재자는 결국 몰락하고 말았고, 그가 이룬 프랑스의 유럽 제패도 무너집니다.
독재자의 그늘에서 벗어난 프랑스 사람들은 이후 혁명의 완수를 위해 한참 동안 싸워야 했습니다.


PS. 베르사이유의 장미 만화책을 보면 오스칼이 나폴레옹과 대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스칼은 '독수리같은 황제의 눈을 한 녀석'이라며 긴장을 타고, 나폴레옹은 그런 그녀를 씩 쪼개주고 가지요.


덧글

  • 졸라맨K 2009/12/22 05:40 #

    적절한 짤방 설명이네요...;;; 맨 위 그림설명보고 빵 터졌습니다.
    5공화국 짤방은 적절합니다. 그렇지만 포도탄으로 머리통만 날리긴 힘들것 같습니다. 포도탄은 산탄이라 머리가슴배도 아닌 여러조각으로 희생자를 찢어줄것 같네요.;;;
  • 초효 2009/12/22 12:10 #

    그냥 그렇다는 거죠 뭐...^^;;;
  • 이준님 2009/12/22 08:17 #

    베르시이유의 장미에 한 장면 나온 나폴레옹은 졸라 미소년 버젼이지요.

    하여간 작가는 후속작으로 (베르사이유..의 두 주요 인물이 주요 조역으로 나오는) 나폴레옹 시대극 "에로이카"도 그렸다는건 유명한 일이지요.
  • 초효 2009/12/22 12:11 #

    오호, 그건 몰랐네요. 요새 이 작가가 배용준빠가 되서는 태왕삽질기 만화로 만든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 말코비치 2009/12/22 10:28 #

    태국의 '피분 송크람'에 관해서도 한번 찾아보시길 권유합니다^^.. 나폴레옹과 로베스피에르를 합쳐둔 듯한 인물입니다.
  • 초효 2009/12/22 12:12 #

    예전에 잠롱 스리무앙 방콕 시장의 자서전에서 본듯한 이름같습니다...
  • 부단뽀이 2009/12/22 11:10 #

    링크 신고합니다.
  • 초효 2009/12/22 12:12 #

    예, 링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Swim or Sink ™ 2009/12/22 11:57 #

    만인이 칭송해 마지 않는 프랑스 혁명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다니... 한시바삐 국사 교과서에 실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국사는 이제 학교에서 안 가르쳐도 된다던가요?)
  • 초효 2009/12/22 12:15 #

    세계사 교과서에 실어야죠.

    애매한 기준으로 만든 교과서로 학생들 가르치느니 선택방식으로 바꾸는 게 낫다고 봅니다.
  • outsider 2009/12/22 13:14 #

    아하...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당의 몰락이 그런 데서 비롯한 거군요. 잘 봤습니다.
  • 초효 2009/12/22 14:07 #

    괴물을 잡겠다고 괴물이 되서는 또 다른 용자에게 처단을 당할 뿐이지요. 이건 소위 '진보'라고 자처하는 젊은 정치인들도 인식하고 있어야 할 사안입니다.
  • 흑설탕기사 2009/12/22 17:45 #

    민주주의는 프랑스 혁명 당시에 사람들이 흘린 정도의 피로는 턱없이 부족했나봅니다. 나폴레옹 이후, 시민혁명을 겪고 다시 나폴레옹(3세)의 재림을 겪기도 했으니 말이지요.

    프랑스 혁명 자체는 "제대로 된 민주정을 세웠다"가 아니라 "왕없는 정부가 가능하다"라는 쪽에 더 가깝겠지만 그것 조차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프랑스는 1871년 제3공화국이 세워질때까지는 숱한 삽질과 피를 부르지요.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게 제대로 자리잡힐려면 얼마나 많은 삽질과 피를 봐야 할까요?
  • 초효 2009/12/22 18:44 #

    그만큼 민주주의는 값비싼 체제입니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쏟을 만한 수준의 부와 여유, 기반이 되는 언론과 통신 인프라, 그리고 구체제와 독재와의 싸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정부수립을 포함하더라도 이제 60여년 째입니다.

    419를 겪었고, 군사 쿠데타도 두 번 겪었으며, 부산과 마산의 의거, 광주의 항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629와 하나회 숙청...

    아직 갈길은 멀지만 하나하나 과정은 밟아가며 배우는 것이 있다고 봅니다.

    예전에 운동권이었던 사람이 요새 학생들은 공부하고 직장구하는 데만 신경을 쓴다며, 이나라 민주주의가 걱정이라고 하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러면 된 거 아냐? 그게 우리가 바라던 거였잖아. 대통령 개색히라고 욕할 수 있으면 어느 정도는 된 것 같은 걸. 조금만 더 나가면 되겠네, 뭐."
  • искра 2009/12/22 18:57 #

    나폴레옹은 오슈 장군과 함께 방데에 파견된 바는 없습니다.
    남쪽끝인 툴롱에서 반혁명군과 영국군을 격파하며 최초의 군사적 명성을 얻게 되고,
    그로 인해 오귀스탱 로베스피에르(막시밀리앵의 동생)의 눈에 띄어 24살의 나이로 장군이 되지요.
    테르미도르 반동 후 자코뱅이 몰락하면서 자코뱅파로 몰린 나폴레옹도 이때 숙군 위기에 놓이는데,
    그후 석방된 나폴레옹을 방데의 반란군 진압사령관(그것도 보병!)으로 임명하자 격노한 나폴레옹이
    "!@#$%^&* 영국군과 싸운 내가 방데 촌놈들과 게릴라전이나 하라고? 그것도 보병 장군으로?"
    하며 파리로 상경하여 차라리 오스만 제국의 포병 고문으로 보내달라고 땡깡 부립니다.
    그러던 와중에 파리에서 왕당파의 반란이 일어나고, 총재정부로부터 진압 사령관으로 임명된 나폴레옹은 단 2시간만에 효과적으로 반란군을 제압... 그 이후는 다 아는 이야기지요.
  • 초효 2009/12/22 19:16 #

    아하... 그랬군요.

    나폴레옹 성깔 있네요...;;; 까라면 까는 게 군인이거늘...
  • искра 2009/12/22 19:23 #

    뭐, 그때 순순히 명령에 따라 방데에서 복무했더라면 파리의 반란을 진압하여 우리가 알게된 나폴레옹은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런 의미에서 나폴레옹의 인생을 건 도박 -만약 그때 그에게 운 좋게도 파리의 반란이 없었더라면 사상이 의심스러운 보직 대기 장군으로 남았겠지요- 은 대성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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