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방정 후손에게 구원받은 두 명의 왕 └국사의 장

조선왕조 2대 임금은 정종(제위 1398~1400)입니다.
이방원의 형으로 술로 세월을 보내던 맏형을 대신해서 장자노릇을 하던 사람이었지요.
아버지 이성계를 닮은 전형적인 무인이었고, 우직하고 진솔한 사람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선 슬쩍 복위에 관심이 있던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 나는 안 그랬다네.
- 이미지 출처 : KBS 사극 '대왕세종' -


1차 왕자의 난이 끝나자 이방원은 그를 왕좌에 옹립합니다.
자신이 바로 등극하면 왕관을 욕심냈다고 여론에 두들겨 맞을 것이 뻔하고, 착실한 효자인 둘째형 영안군을 방패삼아서 아버지 이성계의 분노를 피해가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또 한편으로 정종에게는 적장자가 없었지요.)
정종도 동생의 속셈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잡하고 잔인한 정치에 휘둘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정사를 동생에게 맡기고 격구나 하며 지냈지요.

그러다가 결국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이방원에게 왕관을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납니다.
정종은 老상왕이라 불릴 정도로 오래 살고 사냥과 격구, 온천여행을 즐기며 남은 세월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죽고 나서는 몹시 섭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왕으로서 묘호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심지어 조선의 2대왕으로 인정받지도 못했죠.(워낙 영향력이 미비했던지라...)
이러다보니 종묘에서 받는 제사상도 몹시 부실했고, 그 때문에 후대 인사들의 꿈에 자주 정종의 유령이 나타나 이점을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실제 정종의 제사를 정갈하고 풍성하게 지낸 관원이 크게 출세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충녕이가 날 왕으로 생각도 안 했데. 방원이 니가 그따구로 교육시킨 거냐?
- 이미지 출처 : KBS 사극 '대왕세종' -


이런 안습한 상황은 숙종때 막을 내립니다.
숙종 7년, 그 때까지 공정대왕으로 불리던 그는 정식으로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고 종묘에서도 떳떳한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조선 2대 왕으로 정식 인정을 받는 데는 무려 263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숙종에게 구원받은 왕은 또 한 명 있습니다.
바로 비운의 왕인 단종(재위 1452~1455)입니다.

수양숙부 덕에 나는 영원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소!
- 이미지 출처 : KBS 사극 '왕과비' -


다들 아시다시피 단종은 문종의 아들로 왕좌를 욕심낸 숙부 세조의 압박에 상왕으로 물러났다가 성삼문의 복위운동을 기하여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갔습니다.
그러다가 금성대군이 복위를 시도하다 처형을 당했고, 결국엔 서인으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수없이 자살을 강요당했고, 결국엔 자살을 당하고 말지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주변의 사람들에 휘말려 피를 본 이 비운의 왕이 조선의 6대왕으로 인정받는 데도 20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숙종 7년에 신원이 회복되어 대군이 되었고, 다시 숙종 24년에 정식으로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고 복위됩니다.


숙종이 왜 이렇게 정종과 단종을 복위해 주었을까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었을 겁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숙종은 조선 사대부들에게 송자라 추앙받던 우암 송시열도 한 큐에 보내버린 인물입니다.
그는 왕권 강화에 힘썼고, 전대에 허울만 좋던 성리학적 질서를 바로 잡아 유교왕국인 조선의 국왕으로 권위를 높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종과 단종을 복위했을 뿐만 아니라, 사육신과 생육신, 심지어 할아버지 인조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의 신원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아무리 조상, 그리고 자신의 조부가 한 일이라 해도 시비를 분명히 가리고, 충의를 인정해 주는 것이 진정한 성리학적인 질서에 타당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시비를 가리는 건 좋은데, 좀 적당히 하면 안 되십니까?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투덜투덜)
-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tkdtod/647 -


이렇게 숙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한 일은 성리학적 질서를 바로잡은 것 뿐만이 아닙니다.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하고 대동법을 전국에 확산시켰으며, 화폐를 주조하여 경제를 활성화 시키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영토 회복에도 뜻을 두어, 세종 이후 오랫동안 버려졌던 무창과 자성 2진을 회복하여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너님들 과인을 불륜남의 효시로만 기억하는데, 과인도 조선 국왕들 중에선 꽤 명군에 속한다는...
- 이미지 출처 : MBC 드라마 '동이' -


이런 숙종의 왕권 강화 노력에 힘입어 조선은 18세기 말까지 안정을 유지합니다만, 숙종이 남발한 성리학 정책 덕분에 후대에 악영향이 벌어진 것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서원입니다.
사육신과 송시열 등이 배향된 서원이 300개가 넘게 건립이 되었고, 이중에 131개가 사액되어 국가의 지원을 받았죠.
이 서원들이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손에 작살나기 전까지 상당한 폐악을 부리며 조선의 쇠락에 부채질을 했습니다.

숙종이 좀 더 미래를 생각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의 관심은 당대 왕권강화에 있었기에 무리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덧글

  • zjeka 2010/08/27 13:36 #

    잘 읽었습니다. 사진밑 파란글씨로 해석해두신것들이 정말 적절하십니다 ㅋㅋㅋㅋ 오랜만에 국사 이야기들 읽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ㅋㅋ
  • 초효 2010/08/27 14:05 #

    이야깃거리가 바닥이 나서 고민입니다.
  • 고리아이 2010/08/27 15:59 #

    역쉬 날카로운 지적입니다^_^))
  • 초효 2010/08/27 17:39 #

    날카롭진 않았다 생각합니다만..--;;;
  • 고리아이 2010/08/27 19:22 #

    정종과 단종의 묘호를 정해
    종묘의 제사밥이라도 흥향케한 일은
    왕실과 종사에 관계된 일이라
    아주 중요한 내용이지만
    강호 제현 가운데에는
    모르는 이들이 많지요
  • 스즈카 2010/08/27 17:06 #

    그러고보니 의안대군이나 무안대군도 숙종 대에 대군으로 추봉되지 않았던가요.
  • 초효 2010/08/27 17:40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 궤도운 2010/08/28 07:59 #

    맞는 것 같은데 검색하기가 귀찮네요;;
  • 누군가의친구 2010/08/27 17:10 #

    그러고보니 숙종이 복위하거나 신원회복시킨 경우가 꽤나 많군요. 숙종아니였으면 정종과 단종은 역사책에서 뭐라 설명했을지...ㄱ-
    하지만 숙종에 대한 대부분의 이미지는 어째 장희빈과 인현왕후밖에 남는 이미지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깊이 파면 환국정치밖에...ㄱ-
  • 초효 2010/08/27 17:42 #

    정종 = 듣보왕, 단종 = 불쌍한 노산군 정도...

    현재에 와서 광해군을 광해왕이나 광종이라고 임의로 묘호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정식은 아니죠. 조선 마지막 왕인 순종도 정식 묘호라고 하기는 거시기 하다고 들었습니다.
  • 미연시의REAL 2010/08/27 21:12 #

    조선후기야 워낙 왕권강화를 해도해도 왕권이 휘청휘청댔으니..
    더욱이 숙종 스스로가 그 왕권강화때문에 결국 그의 뒤 후사때의 왕권문제와 신권문제에서의 대립문제를 스스로 키워버렸다는 점도 보면.. 조선 중기 이후부터의 사실상 왕들의 왕권강화조치는 당대 자신들의 권한만을 생각할뿐 장기적인 비젼 즉 자기 후대들의 왕권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못하는 경향이 강한것 같습니다.

    실제로 영조의 경우에도 이인좌의 난이라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러한 경향에서 사도세자건과 자기 손자건의 문제를 비롯하여 자신 역시 보위에 오르기전의 문제도 포함되고..정작 제대로 왕권을 안정적으로 강력한 형태에서 후대까지 고려하여 비젼을 갖은 국왕은 딱 두사람 뿐이다라는 생각입니다.

    바로 태종과 성종이죠. 문제는 전자는 조선 최대 명군을 탄생시켰는데.. 후자는 성종이 지 관리 못해서 개박난 문제(하긴 인수대비 나으리 마마보이가 오죽하겠냐능..)를 만들었으니..
  • 이야타 2010/08/27 21:30 #

    인수대비 나으리 마마보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 터지고 갑니다 ㅎㅎ
  • 초효 2010/08/27 21:35 #

    만약 태종이 맏이를 왕재로 밀어붙였으면 아마 우리 역사에선 '폭군 양녕'을 기억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그리고 세종반정이 있었을지도...)
  • hyjoon 2010/08/27 21:28 #

    어쩌면 업적에 비해 숙종이 좀 과소평가되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인것 같기도 합니다. 맨날 장희빈과 인연왕후가지고 우려먹고 있으니 참......ㅡㅡ
  • 초효 2010/08/27 21:36 #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군왕의 업적을 기리는 위인물보다 막장불륜 멜로물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달려옹 2010/08/27 22:58 #

    모...서원도 시작은 좋게 시작한것 아니겠습니까.ㅋ
  • 초효 2010/08/28 08:23 #

    비료를 많이 주면 화초가 죽는 법입니다.
  • 김라면 2010/08/28 00:12 #

    숙종님은 네로황제인가요~
  • 초효 2010/08/28 08:23 #

    한양을 불태우시진 않으셨습니다.
  • Mr 스노우 2010/08/28 01:12 #

    어떻게 보면 숙종도 참 불쌍한 왕이지요. 사극에는 여러번 나왔지만 정작 자기 업적은 별로 나오지도 않고...-_-
  • 초효 2010/08/28 08:24 #

    숙종 : 이게 다 마누라들 때문이다!
  • 無碍子 2010/08/28 09:02 #

    유림의 태산북두이며 살이있는 성인으로 대접받는 송자를 숙청하고 사육신을 복작시킨 분도 숙종이죠.
    임진 병자 양란으로 땅에 떨어진 왕권이 강화된 시기로 봅니다.
    숙종조 이전에는 왕실 장례조차 맘대로 못치렀었지요.예송이라던가...............
  • 초효 2010/08/28 11:56 #

    아, 그 지겨운 예송논쟁...
  • 마무리불패신화 2010/08/28 21:51 #

    결론 : 마누라를 잘 만납시다.
  • 초효 2010/08/29 00:18 #

    맞는 말씀.
  • 몽송 2010/08/29 16:43 #

    초효님 좋은글 황사공에도올려주세요!
  • 초효 2010/08/30 14:03 #

    아, 예...;;;(게으르니즘에 극에 달해 버린지라..)
  • 몽송 2010/08/30 19:53 #

    일축에서는 초효님과강찬님이 동일인물이라는 설도나돌고있습니다.(물론 헛소리지만 ㅋ)
  • 초효 2010/08/30 20:22 #

    ㅎㅎㅎ ^^;;;
  • 나도사랑을했으면 2010/08/31 23:27 #

    조선왕조 관련하여 궁금한것이 하나 있는데...제가 알기론 공식적으로 대군이 존재했던것은 인조대가 마지막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론 세자 아니면 그냥 군들.....
    그리고 숙종이후로는 왕의 혈통에 중인 이하의 핏줄도....(너무 쫌 우생학적 그런 냄새가 드나...) 아무튼 그렇게 되었고....이 계통은 철종대로 끝난것으로 압니다.
  • 초효 2010/09/03 15:45 #

    슬슬 왕조의 한계를 맞이한다는 증거죠.
  • 나도사랑을했으면 2010/08/31 23:31 #

    처음에 대군 얘기했다가 조선후기 왕들의 출신얘기를 하는데....고종이나 순종등은 사실 사도세자의 직계핏줄은 아니죠..이말인즉슨 영조의 계통이 아니란 말임.....영조등의 계통은 인조에서 효종에서 시작되어.....정조,순조등을 거쳐 철종에서 마무리 되죠....그리고 고종(더 정확힌 흥선대원군)은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후손. 전 이런것이 조선후기 왕가의 적장자가 드물어진것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중기까지는 대군들이 많았습니다..세조때나......성종때..등도 그런데 효종이후로는 세자는 있지만 대군들은 없습니다....
  • 초효 2010/09/03 15:46 #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간에도 왕위다툼을 벌이는 상황이 적잖았고, 후기 왕들은 이상하게 중전들이랑 궁합이 안 맞은 듯 합니다.
  • virustotal 2010/09/02 22:30 #

    단종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죠

    단종의 머리가 좋다고는 하나 사육신도 미화도 있고 어떻게 해야 말하나

    황점정치도 그렇고 어찌보면 정치꾼인데.

    단종의 제대로된 장례도 조선도 망하고 일제시대도 망하고

    몇년전에 영월에서 했다고 하죠

    550년만에 국장 ...

    그래서 그걸 매년하면서 관광상품으로 한다는데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701806
  • 초효 2010/09/03 15:46 #

    아무리 그래도 남의 장례식을 관광상품으로 하다니... 단종을 몇 번 죽일 셈인지?
  • virustotal 2010/09/02 22:32 #

  • 초효 2010/09/03 15:47 #

    드라마에서 깨방정으로 나오는 것과 관계있을지 모릅니다.
  • 까마귀옹 2010/09/03 11:15 #

    1.<대왕세종>에서의 정종은 이건 뭐 막후 권력자 수준으로 나오죠. 효령 대군과 결탁해서 신나게 왕세자 양녕대군을 뒤흔들고 태종에게도 대드는(?) 역으로 나오죠. 오죽하면 태종도 'ㅅㅂ.그래도 상왕인데 잔치나 즐기면서 조용히 지내게 해야지..저러다 진짜 뭔짓 할라.'라고 말할 정도이겠어요?
    2.단종 역을 맡은 정태우 씨는 맨날 사극에서 일찍 죽거나 퇴장하는 역이더군요. 단종 3번(<조선왕조 500년>,<한명회>,<왕과비>)에 인종(<여인천하>), <무인시대>의 희종, <왕과나>의 연산군 등..배역마다 30살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 초효 2010/09/03 15:48 #

    1. 배우자체만 해도 꽤 카리스마 있게 생겼지요.
    2. 대조영에서도 청년역이었죠.
  • 백범 2010/09/03 11:53 #

    중종의 첫번째 부인이자 신수근의 딸이란 이름으로 축출된 단경왕후 신씨도 숙종이 복권시킨 거라죠?

    그럼 소현세자나 덕흥대원군도 왕으로 추존하고, 창빈안씨(덕흥대원군생모)도 왕후로 추숭는 생각도 해보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해본다능... ㅋㅋ
  • 초효 2010/09/03 15:50 #

    소현세자는 후손이 왕이 되지 못했으니 왕대접을 하기 어렵지요.(살아남은 석견도 일찍 요절해 버렸고...)
  • 회색인간 2010/09/03 13:10 #

    숙종이 좀 적절한듯....ㅋㅋㅋ
  • 초효 2010/09/03 15:51 #

    허나 아침드라마에 나올만한 불륜남이라는...
  • 2010/09/04 07:26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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