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녀 하루히가 던지는 교훈 └소설의 장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 국내 동시발매 카운트다운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가 곧 있으면 완결되나 봅니다.
연재 중단 이후로 미완으로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제 끝날 거라고 하니 섭섭한 감이 없지 않네요.
아무튼 오늘은 민폐녀 하루히가 왜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지, 그녀가 현실, 특히 이놈의 나라의 교육에 던져주는 교훈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합니다.

21세기 최강의 민폐녀와 그 일당들
-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xfile0918/13418 -

하루히는 호불호가 큰 캐릭터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무지 좋아하는데, 싫어하는 사람은 '저 쌍ㄴ'이라고 운운할 정도로 싫어합니다.
제 경우에도 후자였고, 주변에 있는 적잖은 여성들에게서 하루히와 같은 기질(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 다든지, 내 뜻대로 일이 되야 한다든지...)을 본 터라 꽤나 탐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옴팡지게 재미나게 살아보자' 하루히의 의지만은 높이 사주는 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실편에서 다른 건 다 놔두더라도 어른 미쿠루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더군요.
- 이미지 출처 :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실편에서 어른 미쿠루는 쿈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하루히에게 휘둘린 게 힘들긴 했지만 돌이켜 보면 즐거웠고,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고 말입니다.(그리고 쿈에게 고교시절을 소중히 하라는 충고를 했던가..;;;)

아마도 쿈은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창생활이 지긋지긋하다는 중고등학생들도 대부분 같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저같이 모든 것이 지나가버린... 특히 지나간 시절에 대한 후회가 많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무겁게 와닿더군요.

현실은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처럼 시간이동을 할 수도 없으며, 같은 시간이 되풀이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도 전에 먼 곳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 이미지 출처 :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

저도 그렇지만, 학창시절을 보낸 많은 분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뭘까요.
굳이 한국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유독 한국의 학부모, 특히 어머니와 선생님들은 Ctrl+C 방식으로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해라."

그러면서 공부해서 남주냐, 연애는 대학교가서 해도 된다, 노는 것도 대입 치고 놀아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겪어본 바로는  공부해서 결국 남 좋은 일 더  시킨 것 같다는 겁니다.
성적이야 올랐겠지만, 과연 그것을 기쁨이라 여긴 학생들은 얼마나 될까요? 학부모나 선생들의 허영심이나 학교의 체면을 살리는 데 더 크게 이용되는게 현실인 상황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런 것이 단지 축하의 의미로 여겨지진 않습니다.
제가 삐뚤어져서 그런 걸까요, 세상이 삐뚤어져서 그런 걸까요?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rumaei65/90078827263 -

연애도 대학가서, 노는 것도 대학가서 놀라고 했습니다.
제가 대학시절 만난 교수님은 이런 풍조에 대해서 매우 개탄해 하셨습니다.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애들을 품안에 두고 자기 뜻대로 못해 안달이다가, 민증 나오고 대학교만 들어가면 어른이 된 것처럼 취급하며 방임하는 게 옳은가? 좀더 깊은 학문을 해야 할 대학에서 연애질하고 놀라고 부추키는게 될 말인가?

결론은 교수님이 개탄하신 대로 대략 좋지 않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대학만가면 학업능력이 뚝 떨어진다고 했는데 딴데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뭐 요새는 또 다릅니다. 워낙 세상이 험난하다 보니 대학에서 연애질하고 공부할 시간이 어딨습니까? 스팩쌓고 공부해서 공무원되거나 취직해야지.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놈의 나라는 도대체 학생들을 뭐라고 생각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고, 학생은 나라의 미래인데, 이런 소중한 자원들을 DVD 구워내듯이 키워낼 생각만 하고 그것을 일탈하는 학생들은 불량품 취급합니다.
그리고 오직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학업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죽이고 배재하려 합니다.
만화가 제일 먼저 죽었고, 게임이 현재 두들겨 맞고 있으며, 장르 소설 역시 이리저리 짓밟히는 실정입니다. 과외활동? 그거 제대로 되기나 합니까? 필수적이라 할만한 체육과 역사 과목조차도 국영수의 압박에 넘어가는 게 현 세태가 아닙니까.

뭐 이렇게 입시 공부만 한다고 바른 인간이 될까요? 과연 공부만 한다고 우수한 인재가 될까요?
공부많이 해봤자 도덕심이 없으면 도둑놈이나 사기꾼이 되기 마련이고, 안목이 넓지 못하면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되기 마련입니다.

뭘 뜯어 잡수려는 지 몰라도 댁들은 일단 조낸 비겁하고 책임없는 족속들이라오.
-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

왜 청소년 범죄가 늘어날까요?
앞서 말한 폭력적인 만화나 게임, 소설 때문입니까?
천만에요. 공부만 하라고 외치는 어른들이 계도를 안 해서 그렇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다른 것에 책임을 떠넘기며, 단지 애들이란 이유로 면죄부를 주니까 나라꼴이나 학교꼴이 그모양 그 작단인겁니다.

소실편에서 쿈이 재회한 하루히의 모습입니다.
저 표정이 불만많고 억눌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시스템에 따라가는 답답함이
뒤섞인 것이라 느껴지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 이미지 출처 :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

소실편 세계의 하루히는 별다를 것 없는 명문고의 학생일 뿐입니다.
남들 다 가는 길을 따라서 가고, 자신은 그리 특별하지도, 주변에서 뭔가 재미난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지요.
옴팡지게 재미난 일을 위해서는 민폐도 마다하지 않는 개성있고 캐발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개성 강한 민폐녀가 없는 세계에 대해서 쿈은 이렇게 느낍니다.

"이런 거 재미없네."

예, 재미가 없습니다.
환생이고 자시고 한 번 뿐인 인생, 그것도 가장 싱그럽고 화려한 시간을 재미없게 보내는 게 온당하냐 이말입니다.(물론 어떤 분은 문예부의 수줍은 나가토와 알콩달콩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게 낫지 않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닥치고 캐발랄! 신명나게 즐겨보세~
- 이미지 출처 :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

많은 사람들이 하루히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런 시스템의 굴레를 생까고 최선을 다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세상을 옴팡지게 재미있고 즐겁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부러워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더구나 소설이란 것은 대리만족의 성향도 강하니...) 


어린 시절을,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많은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그러니까 공부를 해야지...라고 믿습니다. 물론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단지 지식을 암기한다고 공부가 아닙니다. 얼마나 뜻깊게, 얼마나 즐겁게, 얼마나 보람되게 많은 것을 보고 겪고 배우느냐가 진정으로 올바른 공부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주는 것이 앞서나간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이런 제 말에 피식 웃으며 '덕후 색히야, 현실 무시하지 마라' 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자, 그런 분들에게 묻겠습니다. 그럼 우리의 현실은 과연 옳은 것입니까?

오늘 뉴스를 보니 카이스트 학생이 또 한 명 자살했습니다. 그 전에는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정말 즐겁게 로봇제작을 하던 학생이 삶을 포기한 적도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의 성적비관으로 인한 자살은 이제 놀랄만한 일도 아닙니다.

경쟁 사회인 건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다양함을 추구해야 할 사회에서, 다양한 길을 걸어갈 인재가 필요한 나라에서 오직 한쪽으로 몰빵하고, 다른 계열은 천대시하는 작태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다른 길로 충분히 대성할 수 있는 사람을 억지로 한쪽 길로 몰아넣고 강하지 못하다고 채찍질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약하다고 쓰레기라고 낙인을 찍는 세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현실은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잘못된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된 미래를 만드는 짓입니다.


아무튼 꼭 소설이나 만화같지는 않더라도,
어린 세대들에게 '옴팡지게 재미난 학창시절'을 만들어주는 것은 중요한일입니다.(시간을 되돌리거나 과거나 미래로 보내줄 수 없다면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X같고 힘들게 살았으니까 니들도 똑같이 그래야 한다...는 사상으론 미래가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미래를 보는 것은 결코 즐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덧글

  • 라쿤J 2011/03/30 15:34 #

    전 하루히를 보다가 하루히의 능력치를 보고 어느순간부터 안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수준-이라는 식이었다면 모를까 공부와 운동 양쪽 다 탑클레스인 하루히가 학교생활마저 즐겁게 지내는 거 보고 짜증이 났었던거 같아요.

    즐거운건 능력치 쌓아놓고...라는건 라이트 노벨에서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란게 좀 서글프네요.
  • 초효 2011/03/30 15:45 #

    기본이 되야 하는 건 맞는데, 하루히는 사기죠.
  • 명상 2011/03/30 16:57 #

    하루히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말씀하시는 바는 충분히 공감가는 군요.
    연애질이고 뭐고 다 대학가서 하라지만 사실 대학가면 대입은 비교도 안되는 취업이라는 허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죠.
    저는 아직 대학생이라, 취업이후에는 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있어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취업하고 나면 또 주변에서 그러겠지요.

    "일단 이거부터 하고 나중에 놀던지 연애를 하던지 해!"

    하지만 아쉽게도 "그럼 고교생이 공부안하고 뭐할래? 대학생이 취업준비 안하고 뭐할래?" 라고 물으면 대답이 궁색한것도 사실입니다. 대응할 말을 못찾으니 그냥 순응하고 버로우 타버리는거죠.
    아쉬운 일입니다.
  • 초효 2011/03/30 17:06 #

    취업한 후에는 확실히 들을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남자는 장가가라는 것이고 여자는 시집 가라는 것이죠.
  • 셸먼 2011/03/30 18:58 #

    하루히는 혼자 공부 운동 예능 전부 올탑클래스인데, 쿈은 소설이 진행될수록 놀기만 하느라 떨어지는 성적을 걱정하고 있으니, 어째 무척이나 불쌍합니다.
  • 초효 2011/03/30 19:41 #

    단원의 성적이 떨어지면 단장이 책임을 질 일이죠.
  • 검은불길 2011/03/31 13:31 #

    뭐, 하루히님께서 쿈과 떨어지고 싶어할 일은 없으니 쿈도 잘 졸업해서 명문대(하루히가 간다면) 갈겁니다~
  • 검은불길 2011/03/31 13:33 #

    문예부 나가토라 알콩달콩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러려면 역시 공부만 해서는 안되겠죠. 제가 학교에서 책을 미친듯 읽던 사람이라 아는데 상식 of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을 학교 애들이 아무도 모르는 걸 보면 눈물이 나더군요.(책 좀 읽어!)
  • 초효 2011/03/31 14:17 #

    저도 가끔 후배들이 역사나 사회적인 문제에서 상식으로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을 보고 곤란했던 적이...
  • srin 2011/04/01 22:10 #

    68운동을 아십니까... 근데 이걸 왜 알아야 할까요... 전 아직도 모르겠어요... 대체 교양이란 뭘까요... 오히려 겸손할 줄 모르는 교양인은 바보가 아닐까요.
  • srin 2011/04/01 01:51 #

    글쎄... 대학도 대학나름이라서... 모두가 지식인의 삶을 살게끔 사회에서 일자리를 마련할 수 없다면 모두에게 지식인적인 교양수준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라고 봅니다. 뭐, 민폐녀는 미완으로 끝났을 때가가장 아름다웠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어떻게 완결지어도 지금까지의 포스를 넘지는 못할 거라봅니다. 애초 설정으로 뽑아먹을 만큼은 다 뽑아먹었고 신드롬도 이미 지나갔구요.
  • 초효 2011/04/01 09:27 #

    근데 모든 원인이 하루히가 아닌 쿈에게 있었다면?
  • srin 2011/04/01 22:07 #

    그런다고 달라질건 없다고 봅니다. 뭐랄까, 하루히가 일반대중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지고 극장판까지 개봉한 것은(사실, 망했지만) 피시통신 초기에 바람의 마도사, 드래곤 라자가 대박을 터트린 것과 비슷한 류라고생각합니다... 솔직히 하루히 댄스는 알아도 하루히의 내용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 아니던가요... 아, 난 왜 여기서 자학을 즐기고 있을까... 어쨋거나 하루히 신간이나 어서 나와줬으면 좋겠군요. 하도 안나와서 다 창고에 갔다 봉인해두고 슬슬 처분할까 생각중이었는데 참 재미있네요.
  • 초효 2011/04/01 23:37 #

    재밌죠.
  • 스네이프 2011/04/10 23:04 #

    하루히가, 그 하루히가
    뭔가 진지한 이야기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니(...).

    스즈미야 시리즈의 소설로 4번째 궈인 소실이 중요한 점이 그것이라죠.
    바로 쿈이 하루히와의 일상을 '재미있었고,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 인정하게 되는 전환점.

    //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 이렇게 입이 닳도록 말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정말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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