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창군 당시 일본 무기들 └국사의 장

붉은 치하는 다르다!

창군 당시 우리 국군의 사정은 대략 좋지 못했습니다. 막 해방이 되어 나라가 가난하기도 하거니와, 북진통일을 운운한 이태조를 위험하게 본 미국애들이 무기 원조를 안해줬거든요. 거기다 미군 고문관들이 사사건건 간섭을 해서, 오늘날 군대서 꼴통짓을 한 사병을 더러 '고문관 색히...'...라고 부르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열악하다보니 미군은 한국군이 전력이 '남북전쟁 당시 미군의 수준에 불과하다'...라고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일본군과 만주군에 복무하던 장교들 중의 일부(친일파로 분류된...)는 도검까지 패용하고 다니는 구습을 보여 더욱 그런 느낌을 들게 만들었습니다.(김창룡인지 누군지 어떤 놈은 공비토벌 한답시고 칼들고 참수쇼도...)

마지막 19세기 낭만군인이라 불린 김석원 소장.
한국전 당시 새파랗게 어린 채뺑덕이와 알력이 있었던...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japanliter/140107563692 -

아무튼 그런 가난한 군대였기에 패전한 일본군이 버리고 간 무기를 줏어 쓰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오늘은 육해공군에 남아 있던 구 일본군 병기들을 발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38식-99식 소총

38식과 99식 소총은 일본육군의 주력 소총이었습니다.
99식 소총은 38식 소총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고, 일본군은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한 38식을 99식으로 완전히 대체하고자 했으나, 대전 말기의 안습한 물자공급 때문에 완전 대체는 실패합니다.

이놈이 99식 입니다. 38식이 중국군의 한양 소총과 중정 소총보다 약해서 개발되었죠.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dapapr/110073101129 -

일본이 패전한 후, 조선주둔 일본군이 갖고 있던 병기는 미육군 24사단에 압수됩니다. 미군은 이것을 우리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넘겨주었고, 창군 이후도 계속 쓰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우리 땅에는 일본군의 탄약과 화약 생산 시설이 남아 있었고, 정부 수립후 육군에선 부산과 인천에 제 1, 2 병기공장을 차례로 창설하고 운용했습니다. 그래서  이 총기들을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다네요.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악명 높은(조낸 무거웠다고 함) M1 겔런트와 M1 카빈이 미군으로부터 넘겨지면서 비율이 줄어들지만, 경찰쪽에선 계속 썼고, 미군도 일본에 있던 조병창에서 이 소총들에 대한 탄약생산을 재개시켰다고 합니다.

일설에 예비군 창고에서 이놈을 봤다...는 풍문이 들려오는데, 일부 예비군 창고에서 3.5인치 바주카포를 아직 보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2. Ki-9 훈련기

패전 직전까지 한국땅에 일본군 항공기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러나 패전이 되면서 이놈들의 운명은 몹시 기구해 집니다.
제주도에 있던 일본군 항공기들은 일본 병사들에 의해 소각되었고, 운용 가능한 기체들은 일본으로 가져가려다 바다에 그냥 던져버렸다고도 합니다.

진해에는 시텐과 라이덴 등, 일본해군 소속 항공기들이 있어서 한국 해방병단(해군의 전신)에서 짱박아 숨겨뒀지만, 미군들이 귀신같이 찾아서 수거해 가버렸다고 합니다. 창고 구석에 남은 플로트 하나는 훗날 국산(?) 항공기 해취호의 발이 되었죠.

해방 후 김포 공항에 버려진 일본 육군 항공기들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dapapr/110073101129 -

이렇게 사방에 버려진 일본군 항공기를 당시 국내 항공인들이 공군 창설을 준비하면서 동종합체 등을 해서 날렸지만, 이런 행동이 당시 미군정의 심기를 거슬렸다고 합니다.(패전국 항공기가 자기네 머리 위로 날아다녀서...) 그래서 미군정에선 한국땅에 남아 있던 일본군 항공기를 연구용으로 수거한 몇 기를 제외하고 모두 폐기해 버리는데, 덕분에 대부분이 엿장수 손에 넘어가 숟가락과 밥그릇으로 환생(...)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일부가 창군 이후 공군에 넘어 갔는지, 당시 사진에 그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전 당시에 사용된 Ki-9 훈련기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dapapr/110073101129 -

Ki-9 훈련기는 공군의 기록에는 없지만, 사진을 보면 훈련기나 전선통제기로 사용된 모양입니다.
이미 한 시대를 지난 복엽기 스타일이라 속도도 L-4,5 연락기보다 느렸지만, 당시 항공기 한대라도 아쉬웠던 한국 공군의 입장에서는 없는 것보다는 나은 녀석이었을 테지요.

저 녀석이 운용되는데 별 문제가 없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당시 한국 공군의 기술자들이 해방 이전에 일본치하에 기술을 배웠던 점이나, 북한에서 귀순한 슈트로빅을 수리한 일이나, 전쟁 중에 AT-6의 폭탄 투하 장비를 즉석에서 만든 일 등을 생각하면 운용에 불가능하진 않았던 모양입니다.(공돌이를 갈면 해결되는...;;;)

Ki-9는 보유했다는 기록도 없기에 언제 퇴역했냐는 기록도 없습니다. 다만 추정하건데, 한국 공군이 성장하던 한국전 중간에 폐기처리 되었을 것 같습니다.

   
3. PG313 충무공정

창군 당시 안습한 것은 해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장교와 사병들이 틈틈히 고철을 모으고, 그들의 부인들이 삯바느질을 해서 전투함 매입금을 마련하고, 제독께서 직접 깡깡이질을 하던 때였으니 그 사정이야 알만한 것이었지요.

그 유명한 백두산함 도입 이전에 한국 해군은 충무공정을 전력화 합니다.
충무공정은 일본 해군에서 만들다가 패전되면서 건조 중단한 것을 우리 해군에서 건조를 완성시켜 보유한 것이었습니다.

충무공정의 원형은 일본의 3식 경비정입니다.
일본배에 충무공이라 함명을 붙인 것은 거시기 하지만, 당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http://ktx111.blog.me/63624327 -

충무공정은 약 300톤 정도 되는데, 이것이 당시에 한국 해군의 기함이었습니다. 이전의 해방병단에서는 제대로 된 함정이 없어서 민간 수송선을 사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감지덕지 한 일이었던 거지요.

당시에는 함정 뿐만 아니라 피복 사정도 좋지 못해서 해군의 근무복장이 구 일본군과 흡사 했습니다. 해병대의 경우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서 일본군 군복에 염색을 한 정도였다고 하네요.

아무튼 이렇게 안습한 상황에서 보유된 충무공정은 이태조 라인 안으로 들어오는 일본 불법 어선 단속을 주로 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947년 8월 17일 한국 해군 최초의 함정편대훈련에서도 무장이 장착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후에 육상용 37mm 대전차포와 12.7mm 기관총 2정을 달았다고 합니다.  
 
충무공정은 여순반란사건과 몽금포 작전 등에 출진했고, 한국전 연간에는 서해안 봉쇄작전, 덕적도-영흥도 상륙작전, 원산앞바다 해상 경비등 많은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전쟁 후에도 해상 경비 임무를 도맡다가 1956년 퇴역하였고, 동급인 PG315정은 196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일본제 함선이라 해방후 부품이 없어 정비시에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합니다.(깡깡이질 잘못하다 부품이 부서지면 공돌이 사병들이 직접 만들기도 했다고...;;;)

덧글

  • R쟈쟈 2011/05/23 13:46 #

    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공돌이를 갈아보게!!
  • 초효 2011/05/23 23:34 #

    더러운 독일도 마찬가지더군요.
  • 까마귀옹 2011/05/23 14:21 #

    1.김석원과 채병덕의 갈등 사례 중에서도 '명태 사건'이 유명하지요. 채병덕이 북한(...)에서 구입한 명태를 김석원이 모두 압수해선 일부는 부하 장병들 부식(그러니까 반찬..)으로, 일부는 다시 내다 팔아버린 이야기.(그리고 이 때문에 둘다 군에서 잠시 나가게 되지만 실제로 물먹은 건 김석원이란 건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

    2.저 소총 문제는 이후 수년간 벌어지는 경찰과 군부의 갈등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죠. 한국전쟁 전에 조금 들어온 미국제 소화기(개런드라든지, 카빈같은..)의 상당수를 경찰이 꿀꺽했거든요. 이런 갈등이 1960년 4.19 혁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나올 정도면 당시 얼마나 갈등이 심했는지 알 수 있죠.

    3. 한국전쟁 초기 한국공군의 상황은 뭐 제일 처절했죠. 제대로 된 지상 공격 플랫폼도 전혀 없어서 정찰기 후방석에서 손으로 직접 박격포탄이나 수류탄을 던지는 1차대전식 폭격을 해야 했으니...(출처가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나마도 전쟁이 발발할 당시 한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던 폭탄의 수량이 총 300발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먼산)

    4. '충무공'의 이름이 제대로 된 전투함에 붙여진 건 그로부터 약50여년 뒤이지만, 이것도 말이 많지요. 장차 보유할(?) 항공모함이나 이지스함에 붙여야지 왜 이 따위(?) 전투함에 붙이냐면서요. 지금의 이순신급이 모두 퇴역하고 새로운 전투함에 이름을 새로 명명하지 않는 이상 이런 논란은 계속 일어날 것 같습니다.
  • 초효 2011/05/23 23:38 #

    1. 경력만을 생각하면 김석원은 채뺑덕이 깝치는 게 굴욕이었을 겁니다.

    2. 오죽하면 419때 국군이 시민편에...

    3. 전쟁 발발 하루만에 AT-6에 폭탄 장착 투하장치를 만들었다지요.

    4. 우주전함시대에도 논란이 될 듯...
  • Real 2011/05/23 14:59 #

    주제파악 못하고 자기가 아직도 구 일본군인것으로 착각해서 구 일본군 계급으로 다른 장성들에게서 권위주의를 강조했던 김석원이지요. 심지어 구 일본군 방식을 전형적으로 따라갔고..(신성모하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일본 지원병이 온다니까 웃음이나 짓고.. 저런걸 장성으로 앉힌것만 봐도..으휴... 하긴 아부잘떠는 채병덕이를 총참모장으로 앉힌 인사가 위에 계시는데 오죽할까 싶습니다. ) 전술적인 진두지휘원칙에 충실한 것은 좋았지만..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 중대장급을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일뿐이었죠.
  • 초효 2011/05/23 23:39 #

    채뺑덕이나 백선엽같은 '애송이'들에게 군을 맡긴 이유도 다 있는 겁니다.

    당시에 이범석 국방부장관이 이런 말을 했다죠.

    "다 같은 친일파 놈들이라면 젊은 것들이 늙은 것들 보다 덜 물들었겠지."
  • Bluegazer 2011/05/23 16:32 #

    이스라엘 등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저렇게 남은 일본군 장비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다면 그래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뭐 우리 사정보다 외부환경이 여의치 않았던 바가 더 컸으니 이제와서 아쉬워해 봐야 의미가 없긴 합니다만...

    ps. 포스트 제목을 "대한민국 '국군' 창군 당시~(하략)"로 하시는 편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초효 2011/05/23 23:41 #

    뭐 이스라엘군도 창군 초기에 무지 안습했다고 들었습니다.(그러나 그 이상으로 아랍군이 삽을 펐던지라...;;;)
  • Cicero 2011/05/23 17:48 #

    잘 봤습니다.

    제포스팅에서 의문시 됬지만, 북한측 일본군장비보유는 어느정도였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군요.
  • Real 2011/05/23 19:28 #

    자세한 자료는 없습니다.(실질적으로 있다면 북괴가 갖고 있죠.)
    하지만 당시 북괴군의 일본군 장비 보유는 1948년까지 보유하고 전량 퇴역조치합니다. 이는 북괴군의 창설과정에서 1947년부터 본격적으로 소련에서 군복과 같은피복류와 개인화기들이 들어옴으로서 초기 38식 소총에서 완전 벗어나게 됩니다. 당시 소련에 군사고문단의 지원이 워낙 적극적이었던 탓에 1947년 5월이후부터 1948년 2월까지 북괴군의 개인화기부터 시작해서 중장비가 전량 소련군제 장비로 변혁합니다. 아시겠지만 북괴군의 창설은 북괴체제의 정식 건립 이전부터 되어왔다는 점입니다.
  • Real 2011/05/23 19:31 #

    즉 1948년초까지 구 일본군의 소화기나 피복류에 의존하다가 소련의 지원으로 전량도태됩니다. 그이후로는사실상 쓰인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 되고 있지요. 해공군의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소련쪽의 지원이 많아서 즉각적으로 인력만 확보하여 소련제 장비를 인수받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군의 경우에는 원체 해군함정도입보다는 해안방위 목적이 당시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함정지원이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육군과 공군의 경우 소련군 철수에 맞추어서 특히 지원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하더군요.
  • 초효 2011/05/23 23:49 #

    예전에 슈타인호프님이 올린 글을 보니, 소련의 북한 지원도 공짜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북한지역 지주들을 털면서 얻어낸 금과 은, 현물등으로 소련제 무기들을 바꾸었다던...

    38이북 수복 당시에 평양등에서 일본 전투기나 수송기의 흔적들이 있는 것을 봐서 북한도 창군 초기에 이를 이용한 듯 합니다.
  • 無碍子 2011/05/23 20:02 #

    적의 칼로 아군을 무장시키는 건 흔히 있는 일입니다.
  • 초효 2011/05/23 23:50 #

    손자병법에도 적혀있지요. 적의 군수품은 노획해서 이용하라고...
  • 뚱뚜둥 2011/05/24 09:59 #

    예비군 창고에 38식 소총이 있다는 소문은 그냥 소문 같습니다.
    육군에서 보관하던 M1소총을 대규모로 미국에 수출해서 미국내의 M1소총값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이 있으므로 38식 소총은 예전에 사라졌을 겁니다.
  • 초효 2011/05/24 11:23 #

    뭐 그렇겠습니다만...;;
  • 누군가의친구 2011/05/24 13:58 #

    구 일본군 소총들은 한국 해병대가 인천상륙작전 하기 전까지 계속 무장했으니 말입니다.
    제주도에서 M1으로 교체해서 사격훈련시킨건 고작 1주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인천으로...
  • 초효 2011/05/25 13:16 #

    그랬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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