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의 F1그랑프리 └세계사의 장

크리스마스날 방송국에서 흔하게 틀어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영원한 친구(?) 케빈의 '나홀로 집에', 그리고 시간 때우기 유효 적절한 '십계', 그리고 마지막은 '벤허'입니다.

올해도 TV에 벤허 영화가 나오더군요. 2010년 영국에서 개봉한 신작에 케이블에서의 방영이었지만요.
자신과 집안을 몰락시킨 친구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의 벤허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의 전차 경주입니다.

스피드 본능!!!
- 이미지 출처 : 영화 '벤허(1959)' -


로마의 전차 경주는 10월 중순에 행해지는 '10월의 말' 축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시합을 해서 가장 빠른 말을 군신 마르스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당연히 말은 죽었습니다(...아깝게)

이런 제례적인 목적의 경주는 곧 당대의 프로스포츠(...)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요새 F1처럼 경기장에서 트랙을 도는 방식이었는데요, 보통 1바퀴 1200미터인 코스를 12바퀴 돌아서 승부를 냈다고 합니다. 전차 경기가 하루에 100경기가 넘게 열린 적도 있다고 하니 경기 시간은 영화에서 밀고 당기는 것과 달리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던 모양입니다.

보통 경주용 전차는 말 4마리가 끌었습니다.(2두 전차도 있었는데, 이건 8바퀴 경기) 2010년 영국판 벤허에서는 현재의 F1처럼 심판이 출발 깃발을 휘둘렀습니다만, 당시에는 경기를 관람하는 관리가 던진 손수건이 땅에 떨어지는 게 출발신호였다고 합니다.(...이것이 중세로 이어져 남자가 하면 폼이 안난다고 여자들이 하게 된 듯...)

아! 내가 규정 위반을 했다!
- 이미지 출처 : 영화 '벤허(1959)' -


전차 경주는 장비 규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칼날 달린 전차가 나오는 것도 반칙이었지만, 무엇보다 벤허처럼 투구 안쓰고 달리는 것도 규정 위반이었습니다. 2010년 판을 보면 좀 더 가볍게 한답시고 투구도 벗고 흉갑도 벗는 광경을 보여주는데, 한 마디로 죽을라고 환장한 겁니다. 왜냐하면 사고가 났을때 이런 투구와 흉갑이 최소한의 몸을 보호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말 다리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반을 채웠습니다.

이렇게 대비하는 이유는 전차 경주는 사고가 잦고, 죽을 확율도 높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기장은 그냥 다져놓은 모래판에 불과해서 전차가 맹렬히 달리면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 기수의 시야가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코너를 돌다가 꼬라박는 일도 참 많았죠.

그리고 F1처럼 바퀴 교환은 없었습니다만, 보조 스텝이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전차 바퀴는 나무를 뼈대로 해서 철테를 둘렀는데, 맹렬히 질주하다보면 철테가 벌겋게 달아 올라서 바퀴에 불이 붙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습니다. 때론 맹렬한 마찰이 일어나는 차축에서 불이 나기도 했지요.
그래서 보조 스텝들은 늘 양동이에 물을 담아 놓고 대기해 있다가 자기편 전차가 지나가면 재빨리 물을 끼얹었습니다. 물론 이 역시 매우 위험한 일이라 전차에 치이는 사고를 완전히 피할 수 없었지요.

인기 만점의 경기였던 만큼 우승자들도 인기가 많았지요.
- 이미지 출처 : 영화 '벤허(2010)' -


이 전차 경기에서 승리한 우승자는 마라톤 우승자 처럼 월계관을 받고 민중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지요. 한 경기에 수백만 세스테르스를 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상금으로 큰 돈이 걸리고 도박에 판 돈도 커지자, 전문적인 경주팀도 여럿 생겼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목장과 마굿간을 마련하여 우수한 경주마를 양성하여 대회에 출전시키고 우수한 전차 기술자들을 영입하여 보다 빠르고 가벼운 전차를 만들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런 투자는 단지 상금과 판돈을 따내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전차 경기 출전자는 어느 팀 소속이라는 유니폼도 걸쳤는데, 우승을 못해도 두각을 드러내기만 하면 그 경주팀이 키우는 경주마들과 전차를 만든 기술자들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요. 네... 다시 말해 현대 자동차 경주와 마찬가지로 스폰서와 광고를 했던 겁니다.
아무튼 현대의 자동차 경주와 마찬가지로 돈이 많이 드는 경기였기 때문에 전차 경주는 귀족들의 후원을 받는 럭셔리 스포츠였습니다. 

당시 로마에 유명한 전차 경주 선수로는 유다 벤허아우렐리우스 모리키우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20년 동안 전차 경주에 참가하여 100승을 올렸다고 합니다. 경기장에서 죽지 않고 무사히 은퇴하는 베테랑 선수들은 대략 1000~3000경기를 뛴다고 하는데, 아마 그보다 많은 승리를 거둔 선수들도 있었을 듯 합니다.

이런 전차 경주는 로마가 망하고, 또 전차가 전쟁에서 도태되면서 사장됩니다.
그러나 19세기 초반에 마차 경주가 유럽에서 다시 시작되었지요.

계가 레이스라고 불리는데 유럽뿐만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 일본에서도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happykra/10096466736 -


이것이 발전되어 현대의 자동차 경주에 이어진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은 그 틀을 따져보면 거기서 거기고 취향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예수님 살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별로 다른 점이 없는 겁니다. ^^;;;


덧글

  • 쿠라사다改 2011/12/25 16:41 #

    질주본능!! 그런데 가장 빠른 말을 남겨서 그 혈통이 보존되게 하는 게 효과적이었을텐데
    그런 건 없었던 거군요. ;;
  • 초효 2011/12/25 16:44 #

    뭐 모르죠. 평소에 암말 여러 마리에게 붙여두었다면 종자 보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 행인1 2011/12/25 17:14 #

    그러고보니 검투경기도 당대에는 상당한 '산업'이었다는군요.(검투사 양성 뿐만 아니라 소요되는 각종 맹수들을 조달하는 것도 포함)
  • 초효 2011/12/25 18:52 #

    그리고 멸종당하는 동물들...;;;
  • Warfare Archaeology 2011/12/25 20:35 #

    호오~재밌게 잘 봤습니다. ^^
  • 초효 2011/12/26 00:58 #

    나름 이유가 있어 한동안 차단했던 것이오니 이해 부탁 드립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12/26 09:22 #

    아닙니다. ^^ 별 말씀을~~
  • 크핫군 2011/12/25 21:42 #

    그리고 유스타니우스 대제때엔(...)
  • 초효 2011/12/26 00:59 #

    그때 뭔 일이 있었나 보죠?
  • 셔먼 2011/12/25 22:33 #

    전차 경기나 검투사 경기는 로마 군주들의 '빵과 서커스'작전에 적극적으로 이용되기도 했지요.
  • 초효 2011/12/26 01:00 #

    1년에 로마市의 축제기간이 200일이었으니...
  • TheodoricTheGreat 2011/12/25 23:12 #

    아! 딱 한마디가 생각이 납니다. "전차는 달리고 싶다!" 당장, 키르쿠스 막시무스 스타디움으로 달려가고 싶네요.
  • 초효 2011/12/26 01:00 #

    달려라, 흑표!(응?)
  • 아빠늑대 2011/12/26 01:32 #

    딴 이야기인데 '벤허'는 지금봐도 재미있더군요. - 물론 개인적으로 종교적 색채는 빼고 - 보통 옛날 영화등을 옛 추억에 의지해 보다보면 유치하거나 재미없거나 한데 말입니다
  • 초효 2011/12/26 01:43 #

    영웅본색은 확실히...--;;;
  • 누군가의친구 2011/12/26 02:39 #

    그와 관련된 산업, 종사자, 경기 관련 스폰서(?) 이런거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르겠습니다.ㅎㅎ
  • 초효 2011/12/26 09:46 #

    아마 현대의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지도.
  • 雲手 2011/12/26 05:03 #

    캐나다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벤허, 십계같은 종교색 짙은 영화보다는 메리포핀스, 사운드오브 뮤직, 34번가의 기적 등등 가정영화가 주로 나옵니다. 뭐 여기도 명절에 옛날영화라는 공식은 어쩔 수 없는 듯.
  • 초효 2011/12/26 09:46 #

    옛날 영화가 로열티가 싸서 그런 건 아닐지...
  • 雲手 2011/12/27 03:31 #

    물론 그렇죠. 직원들도 쉬어야 하는데 거의 공짜인 옛날 영화 하나 틀어주면 2시간 이상 쉽게 넘어가니..
  • 뚱뚜둥 2011/12/29 00:14 #

    1200m 12바퀴라니, 엄청난 거리를 경주하네요.
    현재의 경마에서는 1,000~2,000m 사이로 알고있습니다. 4두마차와 다르기는 하지만 그당시의 경주마는 장거리를 달렸네요.
  • 초효 2011/12/29 10:01 #

    그러니까 당대의 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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