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소개(?) 해 준 도읍 └국사의 장

오랜만에 야사野史를 이야기 하겠습니다.
시대는 Long Long Ago에 해당하는 서력 초기... 고구려 유리왕이 등극해 있을 때였습니다.

한 차례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유리왕 등극 당시 고구려 분위기는 어수선 했습니다. 건국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소서노와 그 일족들이 남하해 버렸고, 전통 강국인 부여의 압박이 드세지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런 어려운 시기, 고구려에서는 제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물로 바쳐야 할 돼지가 도망간(...)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유리왕께서는 화딱질이 나서 돼지치기인 설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잔소리로 한참 설지를 갈구신 후,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셨지요.

이 간나쉐이! 도야지 찾을 때까진 돌아오지 말라우!
- 이미지 출처 : KBS 사극 '바람의 나라' -

이에 설지는 추돈(...)의 모드로 들어가 도망간 돼지를 찾으러 떠났습니다.
보통 돼지 같으면 이미 다른 사람에게 잡혀서 바베큐가 되었을 것이나,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올려진 놈은 나름 비범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돼지는 사람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쳤고, 설지는 사람들에게 돼지의 용모파기(...)를 물어가며 놈을 쫓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압록강변 모처에서 돼지를 잡았는데... 돼지를 잡은 곳을 둘러보니 참 경치가 좋았습니다.

설지는 돌아와서 유리왕에게 돼지를 잡은 것을 고하고, 돼지를 잡아온 동네가 기가 막히게 경치가 좋더라고 자랑을 했지요.
단순히 설지의 설레발인지, 아님 정말 경치가 좋은 곳인지 궁금했던 유리왕은 친히 돼지가 잡힌 동네로 납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설지의 말대로 경관이 빼어나고, 아울러 꽤 좋은 지리적인 요충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유리왕은 서기 3년, 부친인 주몽이 도읍으로 삼았던 졸본 땅을 떠나 이곳으로 천도합니다.
이곳이 바로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인 국내성(國內城)으로, 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현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후대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고구려의 국력과 문화가 키워진 의미있는 지역이지요. 
   
안타깝게도 무상한 세월이 흐른 지금은 잔해만 남았습니다.
- 이미지 출처 : 뉴시스 -

원래 천도란 국가가 성장하면서 기존의 수도가 제 기능을 못 하거나, 정치적으로 쇄신의 필요성이 있을때 감행됩니다.
장수왕이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을 때도 그랬지만, 유리왕이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했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건국 주역들이 빠져나가고 어수선해진 고구려를 쇄신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전통 강국인 부여의 압박을 이겨내기 위해 보다 전략적인 요충지로 옮겨가야할 이유도 있었겠지요.

아무튼 고구려 역사에 이름을 오르내리던 국내성은 고구려의 멸망과 동시에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합니다.
그러다가 천 수백년의 세월이 지나고 다시 역사의 무대에 이름을 내밀 기회를 잡게 되는데... 그때가 바로 경종 4년, 서기 1721년의 일입니다.
당시에 의주 부윤이었던 이명언은 의주의 방비 상태나 방어 여건이 대략 좋지 않다고 고을을 옮겨야 한다고 상소하면서 이주할 대안 지역으로 국내성을 추천했습니다.

...여기에서 30리쯤 되는 거리에 고성(古城)이 하나 있는데 이른바 국내성(國內城)으로 곧 고구려(高句麗)에서 5백 년간이나 도읍을 하였던 곳입니다. 형세의 편리함이 본주(本州)의 주성(州城)보다 백 배나 나을 뿐 아니라 바로 하나의 천작(天作)의 금탕(金湯)입니다. 몇겹으로 둘러쌓인 속에 저절로 일국(一局)을 이루고 있는데 옛 성터가 지금도 완연하고 밖은 험준하고 안은 평탄하여 토곽(土郭)이 천연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주위[周回]는 3천 6백여 보(步)나 되는데 그 안에는 옛 우물이 더욱 많고 겹쳐서 간수(澗水)의 여러 줄기가 마름이 없이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성의 동남쪽에는 따로 산기슭 하나가 있어 옆으로 뻗어서 빙 둘러막고 있으니 하나의 외곽(外郭)을 이루어 놓았으며, 또 10여 리를 지나서 압록강의 여러 줄기가 하나로 합수된 곳이 있는데, 바로 대총강(大摠江)입니다. 또 고진강(古津江)이 있는데 대총강의 하류와 해구(海口)에서 합쳐지니, 이곳이 바로 양하진(楊下津)입니다.
구성(舊城)에서 수구(水口)에 이를려면 양쪽 골짜기가 묶어놓은 듯한데 그 가운데로 한가닥 길이 통해져서 바로 10리 장곡(長谷)을 이루고 있으니, 설사 오랑캐의 기병(騎兵)이 압록강을 건너가도 한 걸음에 곡구(谷口)에 도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성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 백마 산성으로 물러나 지키더라도 적들이 또한 우리의 퇴로(退路)를 차단하지는 못할 것이니, 그 주성(州城)에 비교하여 같이 논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만일 국내성(國內城)으로 고을을 옮기고 백마 산성과 서로 성원(聲援)을 의뢰한다면 비단 험준함을 믿어 스스로 견고하게 수비할 뿐만 아니라, 황주(黃州)철산(鐵山)의 통로가 두 성 사이에 있게 되니 비록 지키지 않는다 해도 걱정될 것이 없습니다...(중략)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온라인 -

이명언의 이같은 상소가 있고 두 달 후, 판중추부사 조태채가 연경을 다녀오면서 일부러 국내성을 들러 상황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그도 이명언의 상소대로 하는 게 좋다고 찬성하지요.
하지만 조선의 국내성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칫 국경 문제로 청나라와 잡음이 일어날 수도 있고, 국가 여건도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경종 당시 대신들은 뭔가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지요.

결국 국내성은 부활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관리하고 싶어도 현재는 남의 땅인 상황이고, 그 전에 윗동네 북괴왕조 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상황이라 국내성을 돌볼 길은 요원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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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런비쨩☆의 사야카 모에 이글루♡ : 경종 때의 국내성은 고구려의 국내성인가? 2012-09-17 14:40:35 #

    ... . 국내성의 형편이 어떠한지는 알 수가 없지마는 나라의 습성이 인순(因循)에 젖어 있어 비록 좋은 계책이 있더라도 시행되지 못하게 되니, 한스러울 뿐이다. 예전에 초효님이 국내성 야그 꺼내면서 꺼낸 떡밥을 이제서야 디테일하게 읽었는데. 여기서 국내성은 조선시대의 착각일 가능성이 극히 높습니다. 여기 나온 국내성은 기본적으로 위치가 이러합니다. 1.백마산성 ... more

덧글

  • 무갑 2012/01/17 20:49 #

    간도랑 만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이명원은 착했습니다 그런데 고자왕ㅅㄲ가 무능해.머그란 땅도 못먹었씁니다. 고자왕을 주깁씨다 고자왕은 나으원수!! ㅆㅂㄴ, ㄱㅅㄲ, 4가지 없는놈"이라고 외칠만한 기사네요.

    근데 조선시대떄 저곳을 점령해 사람들이 이주했다면 고구려 유적들(특히 고분들)이 과연 무사했으려나 따져보면(성벽이랑 고분에서 돌 뺴다 주춧돌에 쓰고 무덤 파헤쳐서 귀금속은 팔고, 기타 금속유물은 녹여썼을듯;;;)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초효 2012/01/17 20:55 #

    이명원이 아니라 이명언입니다.
    조선시대 때 국내성이 재개발 되었다면 성곽은 확실히 조선시대 식으로 재건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도굴은 당시에도 중범죄인지라...
    더구나 실록을 보면 삼국시대 왕들의 무덤도 돌보라는 기사가 있는 걸로 봐서 그냥 내버려 두진 않았을 겁니다.
  • 무갑 2012/01/17 21:03 #

    억 오타;;;
    오호.. 중범죄였군요. 생각해보니 유교국가에서 조상무덤을 파헤치는 행위는 부모님살해와 비슷하게 여겻을 테니까요.
    그래도 국경지대다보니 흉년이나 어수선한 시기에는 몰래몰래 파헤쳤을 것 같습니다.
  • 셔먼 2012/01/17 20:55 #

    그런데 장수왕 당시에도 부여의 세력이 잔존했나요? 미천왕 이후로 거의 자취를 감춘 걸로 알고 있는데요.
  • 초효 2012/01/17 20:59 #

    동부여가 선비족 강습을 받고 비틀거리다 494년 문자명왕에게 항복한 걸로 압니다.
  • 셔먼 2012/01/17 21:02 #

    제가 잘못 알고 있었군요. 현도군을 칠 때 같이 정벌한 것으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 대공 2012/01/17 20:56 #

    오랫만에 듣는 이야기군요
  • 초효 2012/01/17 20:59 #

    알고계셨나 보군요.
  • 누군가의친구 2012/01/18 19:49 #

    하긴 그러지 않아도 이전 숙종대에 백두산 정계비까지 세울정도로 영토 경계문제로 트러블이 있었으니 쉽게 꺼내기는 무리였을지도 모르지요.
  • 초효 2012/01/18 20:05 #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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