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와 월진회 └국사의 장

네이버에 들어가니 오늘이 윤봉길 의사 의거 80주년이라고 알려주더군요.
안그래도 역사 관련 글 쓸 소재가 떨어져 고민이던 참에 마침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오늘은 윤봉길 의사와 월진회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내가 단지 폭탄만 던졌다고만 여기지는 말아줘.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kwang5139/30137138907 -

보통 윤봉길 의사 하면 우리는 도시락 폭탄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방법했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 의사는 의거를 일으키기 전, 아니 임시정부에 오기 전에 이미 민족주의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하신 분입니다.
 
어린 시절 그는 덕산공립보통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3.1운동를 보고 일본인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자퇴를 하고 매곡 성주록의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이 시절 성주록 선생은 그에게 성삼문의 호인 매죽헌에서 죽자를 뺀 매헌이라는 호를 지어주기도 했다는 군요.
하지만 나중에 다시 일본어를 비롯해 신학문을 공부했는데, 이는 적을 잘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웬 무지한 시골청년이 부친의 묘를 찾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라가 망한 이유가 '무지'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19세의 나이에 자신의 집 사랑방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다 야학당을 개설했지요. 그와 함께 농촌계몽운동도 진행했는데, 그때 설립한 것이 바로 월진회(月進會)였습니다.

언듯 이름이 비슷하지만, 월진회는 과거 친일파들의 일진회나
 현재 무개념중고딩의 일진회와 차원이 다른 조직입니다.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spy4282/140149021774 -

일찍 일어나 새벽달을 보며 일을 하자...는 취지에서 월진회라고 지었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론 '날로 앞으로 나가며 달마다 전진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월진회 홈페이지 주소 : http://woljin429.com/ )

당시 대부분의 한국 농민들은 빈곤하고 피폐한 상태였기에, 농촌을 진흥시킬 민간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윤봉길 의사는 의형제 황종진과 정종호 등 36인과 함께 충남 예산면 덕산면에서 월진회를 세웠습니다.

월진회에서 한 일은 민둥산에 나무를 심거나 매달 10전씩의 회비를 모아 농가에 새끼 돼지나 닭을 사육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를 심으면 땔감이나 열매를 얻을 수 있고, 홍수를 방지할 수 있었고, 돼지나 닭으로 농가의 수익을 늘리게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돼지가 커서 새끼를 낳거나 닭이 알을 낳으면 이것으로 다시 다른 농가를 지원하는 방식이었지요.

윤의사는 이렇게 농가가 부유해지면 민족의 경제도 살아나고, 그런 기반이 세워지면 조국의 해방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농촌에 도움이 되는 아주 바람직한 조직이었기 때문에 이 월진회는 윤 의사 사후에는 물론, 해방 이후로 지금까지 쭉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1년 이사회를 열고 있는 월진회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gayasuragan/40122370042 -

물론 현재는 과거와 경제나 사회의 상황이 다르기에 월진회의 활동도 예전과 똑같지는 않습니다.
근래에 월진회는 윤봉길 의사 기념 사업 및 사상 연구, 문화축제 개최, 장학금 전달, 농촌체험 프로그램 개발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예산의 월진회와 2000년에 서울에 세워진 사단법인 월진회가 정통성 문제를 두고 시끄럽기도 했습니다.(관련 기사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227 ) 이 서울에 세워진 사단법인 월진회는 현재 여성가족부 소속으로(...) 다양하고 알찬 사업을 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윤봉길 의사의 유산이나 명맥은 지금까지 쭉 내려오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진정으로 민족의 운명을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나라를 위해 몸 던진 그의 행보를 오늘날의 우리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덧글

  • rumic71 2012/04/29 14:02 #

    윤의사가 이토오를 쏘았다고 주장한 누군가가 퍼뜩 떠오르는군요...
  • 초효 2012/04/29 14:14 #

    뭘 그 정도 가지고... 저는 박정희가 청산리 대첩때 일본군으로 참가했다는 글도 봤습니다.
  • 재팔 2012/04/30 19:29 #

    상해 홍구 공원에서 천황에게 폭탄을 던졌다는 지문이 골든벨에 나온 적도 있어요.ㅋㅋㅋ
  • 초효 2012/04/30 20:32 #

    이봉창 의사와 햇갈렸나 봅니다.
  • 셔먼 2012/04/29 23:42 #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것을 장려했을 정도면 당시 일제의 벌목사업이 빈번했고 화전민의 수가 상당했던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군요.
  • 초효 2012/04/30 00:43 #

    그건 잘 모르겠고, 이미 구한말에 도성이나 마을 주변의 산들은 절단났다고 하지요.(심산유곡은 호랭이가 있어서...)
  • 뚱뚜둥 2012/04/30 14:34 #

    셔먼//
    조선초기에는 궁궐에 호랑이가 들어왔다는 일화가 있을정도지만 조선말기가 되면 민둥산으로 바뀝니다.(러시아가 획득한 벌목권 등은 사람이 별로없는 함경도입니다.)
    낙옆같은것은 퇴비로 쓰고, 나무는 땔감등으로 사용하다보니 사람사는 근처의 산들이 무사할수 없게 됩니다. 안동등지의 양반들이 산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계를 조직하기도 했지만 이건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일제시대가 되면서 민둥산에 식목사업이 활발히 시행되고 산에 함부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습니다.(일본놈들도 이제 조선땅이 자기것이 되니 여러가지 개선조치를 합니다.)
  • 초효 2012/04/30 17:44 #

    구한말 서울 사진만 봐도 근방의 산들 상태를 알 수 있죠.
    사실 전국적으로 나무가 이렇게 울창하게 된 것도 7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 2012/05/02 18:4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효 2012/05/02 21:14 #

    오호, 이런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사이트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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