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의 뇌수술 └국사의 장

http://imnews.imbc.com/replay/nwtoday/article/3146462_5782.html

중국에서도 이런 인골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 확인 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작년에 고대의학과 관련해서 글을 올린 적이 있지만, 고대인들의 의학은 우리가 상상하던 것 보다 수준이 높았던 모양이네요.
아무리 단순히 주술적인 의도였다지만, 수술 후에 환자를 살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뉴스에서 언급 한대로 가장 오래된 뇌수술 흔적은 기원전 4000년 경 유골에 있었습니다. 세계 대부분 지역들이 우가우가 하던 시절 임에 불구하고 소위 주술사란 양반들은 환자에게 환각제를 먹이고 흑요석 메스와 정으로 머리를 쪼개고 나쁜 악령을 몰아 내는 의식을 치뤘죠. 물론 실력도 있고 경험도 많은 주술사들의 경우는 직접 칼을 대어 악령(급성경막혈종이나 종양)을 제거하기도 했을 겁니다.

이러한 외과의학은 고대 그리스로 이어졌고, 로마에도 전수됩니다. 그리고 비잔틴인 의사들은 아랍권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뇌수술을 했고, 이것은 당시 사라센 제국을 여행하던 당나라인 두환이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동양에서 외과의술로 유명한 사람은 화타와 편작입니다.
화타의 외과수술은 관우의 일화나 다른 여러 일화를 통해서 유명하고, 편작도 까마귀를 쪼갰다가 도로 붙여서 살려낼 정도의 실력을 가질 정도로 출중했다고 하지요.(...편작 본인은 자기보다 형님들이 더 뛰어나다고 했습니다만.)

아무튼 이렇게 외과의술이 발전하게 된 계기는 결국 전쟁입니다.
전란으로 인해 창칼이나 둔기, 화살에 의한 부상자가 속출하는 과정에서 이를 살리려고 손을 쓰다보면 의술이 발전하게 되는 건 당연하겠지요. 더구나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고, 진한교체기, 전한-후한 혼란기에 위촉오 삼국시대로 이어지는 동안 주구장창 싸우고 죽었으니 단지 화타가 아니더라도 외과에 있어 제법 실력있는 의사들이 많았을 겁니다.

중국의 의술은 한국으로 전해졌을 것이고, 고구려-백제-신라끼리 치고받는 중에서 외과의술도 나름의 진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뭐 여기서 픽션을 가미한다면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아놔, 또 과거로 떨어졌다능. 이번엔 백제...;;;
- 출처 : MBC 드라마 '닥터 진' -

어쩌면 1995년에 발견되었다는 유골 근처에서 오파츠나 다름없는 메스나 수술도구들이 있었을 지 모릅니다. 어쩌면 혼란과 파국을 염려한 학자들이 이를 숨기고 있을 지도 모르지요.고만해 이 미친놈아

아무튼 천수백년전의 과거가 우리가 상상하던 이상이라는 점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덧글

  • 셔먼 2012/09/27 17:23 #

    고대 이집트의 해부학이나 의학 수준도 발군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 초효 2012/09/27 19:10 #

    미라를 만들다 보니...
  • 아빠늑대 2012/09/27 18:40 #

    뇌수술은 가야에서도 있지 않았던가요? 기억이 가물하네요, 딴데껄 보고 헷갈리는건가...
  • 초효 2012/09/27 19:12 #

    뇌수술이 아니라 편두일 겁니다. 아직 아이가 갓태어나서 뼈가 말랑말랑 할때 이마에 넢적한 돌을 얹어 놓아 이마가 길고 뒷머리가 길게 두개골을 성형하지요.
    이게 어릴 때 하면 그나마 나은데 성인때 도전(...)하다가 죽는 케이스도 있었다고 합니다.

    편두는 우리나라 말고도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유목문화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외계인을 흉내낸 거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 無碍子 2012/09/27 23:02 #

    화타가 의사인지도 의문입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화타전(華佗傳)에 여러 치료 사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실명으로 기록되어 생사이 확인 된 사람은 유비가 서주에 있을 때 수하이기도 했던 진등 한사람 뿐입니다. 그 기록을 옮겨 봅니다.
    ******************
    廣陵太守陳登得病,胷中煩懣,靣赤不食。佗脉之曰:「府君胃中有蟲數升,欲成內疽,食腥物所為也。」即作湯二升,先服一升,斯須盡服之。食頃,吐出三升許蟲,赤頭皆動,半身是生魚膾也,所苦便愈。佗曰:「此病後三期當發,遇良醫乃可濟救。」依期果發動,時佗不在,如言而死。

    광릉 태수 진등이 가슴이 답답하고 얼굴이 붉어지며 먹지 못하는 병에 걸렸을 때 화타가 맥을 보고 말했다.
    “부군께서는 위 속에 벌레가 몇 되 정도 있어 종기가 되려 하는데, 이것은 날고기를 많이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탕약 두 되를 달여 먼저 한 되를 복용하고 조금 쉰 후에 나머지를 복용하게 하였다. 한식경이 지나 세 되 쯤 되는 양의 벌레를 토하였는데, 벌레는 머리가 붉었고 반은 생선회 상태였다. 그리고는 앓았던 병이 곧 나았다.
    화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병은 삼년이 지난 후 재발할 것인데, 좋은 의사를 만나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삼년 후에 병이 도졌는데 그 때는 화타가 없었고, 그 말대로 죽었다.
    *********************
    생선회를 먹으면 기생충이 생긴다는 건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선회가 기생충으로 변했다고 진료기록에 남긴 의사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생선회가 뱃속에서 소화가 되지 않고 그 모양을 유지한다는 것 역시 의사의 진료기록으로는 말이 안됩니다.

    화타전은 방기전(方技傳)에 수록되었는데 방기라는 말은 방술입니다. 삼국지의 저자는 화타를 방술사로 본 것입니다.(당시 의사와 방술사의 구분이 안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의보감도 방술적 요소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진료기록도 대동소이합니다.
    수술에 대한 전설은 삼국지연의 때문에 생긴 것으로 봅니다.
  • 구천사백수십칠 2012/09/27 22:38 #

    그렇군요. 처음 알았네요.
  • 초효 2012/09/28 10:15 #

    잘봐줘도 약제사 정도라는 거군요.
  • 푸른양말 2012/09/29 02:33 #

    하지만 외과수술은 위생와 멸균개념이 희박했던 당시로서는 매우 위험하지 않았을까요?
    중세 서양에서 행해졌던 외과수술도 패혈증을 막지 못해 수술 후 죽어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아마 동양에서도 해부학(현대의 그것과는 다른)에 기초한 외과수술이 패배하고 예방위주의 의학이 발달 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 초효 2012/10/02 11:45 #

    아마도...
  • 암호 2012/10/05 19:31 #

    장기려 박사 평전에서도 한국 외과가 발달된 것도 한국전쟁이라는 아이러니 때문이라는 식으로 서술되었으니 말입니다.
  • 초효 2012/10/09 10:54 #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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