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명보의 절반의 성취 축구의 장

2002년 최고의 장면 중의 하나
- 출처 : 연합뉴스 -

10년 전, 항상 까임의 최전방에 선 두 노장이 있었습니다. 90년대 한국 축구를 대들보였던 황선홍, 홍명보 이 두 사람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월드컵 첫번째 1승, 16강은 물론 4강이라는 성적을 일궈내며 험난하고 참혹했던 선수생활을 좋게 마무리 합니다.(실질적인 국가대표 은퇴식은 월드컵 후에 열렸던 브라질과 평가전)

황선홍은 부상의 여파로 곧 현역 선수에서도 곧 은퇴를 했고, 홍명보 선수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LA갤럭시에 진출해서 활동하다가 선수 생활을 마감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여느 유명 선수들이 그랬던 것 처럼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홍명보의 경우는 축구 행정가가 될 것 같았지만, 국가대표 코치직을 거치며 대표팀 지도자로 길을 걸었습니다. 이와 다르게 황선홍은 K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 10년 후... 두 사람 모두 지도자로서 절반의 성취를 이뤄냈습니다.

홍명보는 한국 축구에 첫 올림픽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 출처 : 마이 데일리 -

홍명보 감독이 2005년 축가대표팀 코치로 지도자생활을 시작했을 때 말이 많았습니다. 유명한 선수가 지도자 생활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그 당시 홍명보 감독은 코치 라이센스가 없었으니까요. 아무리 코치라지만 그런 것도 없이 덜렁 코치직을 맡게 된 것은 다른 지도자들이 볼때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었고, K리그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황선홍 감독에 비교되어 제법 까였습니다.(항상 그렇지만 축협의 전근대적인 행정도 도마 위에...)

그러나 이후 청소년 대표팀을 맡아 2009년 이집트 19세 대회에서 8강에 오름으로서, 지도력에 대한 불신을 어느 정도 씻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조련한 선수들을 데리고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지만, 당시 연령대에서 능력 있는 선수(유병수)의 발탁하지 않았던 점과 4강 UAE전에서 막판 치명적인 교체 실수, 그리고 야구 대표팀에 대한 디스로 상당한 비난을 사게 되었지요.
그렇게 상승하다 추락하다 보니 지도력은 없고, 선수빨이다...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습니다.(근데 당시에 홍 감독이 맡은 세대가 역대 최약체라고 평가 받았던 걸 생각하면...)

그러다 올림픽 대표 감독을 수행하며 예선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올림픽 대표 연령에서 주전인 선수들이 해외진출을 하거나 국대에 선발되면서 많은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최종 예선 상대가 사우디, 오만, 카타르 기름집 침대 축구 3인방이라 런던으로 가는 길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리저리 선수들을 살펴보고 뽑아오고, 선수들에게 단합을 강조하면서도 경쟁을 시키며 좋은 팀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런던에 진출하면서 국대급 선수들이 돌아오자 해볼만 하다고 여기게 되었죠.(해외에선 예전 탈락 팀이라고 손꼽았지만...)

런던 올림픽에서 일이야 다들 잘 아실 겁니다. 특히 축구 종가 영국에서 홈팀을 상대로 승리를 따낸 것은 상당한 쾌거였지요. 그리고 3,4위전에서 숙명의 라이벌 일본(그러나 성용이나 자철이 세대에겐 밥일 뿐인...)을 만나 승리, 동메달을 거뭐쥡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런던 대회에 출전한 18명의 선수들이 모두 경기에 출전(김기희라던가, 김기희라던가, 김기희라던가......)하면서 병역면제의 해택을 얻어 선수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길은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 출처 : SBS 스포츠 -

올림픽 대표를 이끌고 주목할 만한 성적을 올렸지만, 홍 감독은 앞으로 더 갈 길이 남아 있습니다. 프로팀 감독을 맡던, 몇몇 축구 팬들의 예상대로 최강희 감독 이후 국대를 맡든... 앞으로도 지도자로서 먼 길을 걷게 될 겁니다.
그 과정에서 다시 역사를 쓸 수도 있을 지 모르고, 오히려 지난 영광이 무색해지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가 자신이 이뤄낸 것을 오만이 아닌 좋은 경험으로 삼아 계속 전진해 나간다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명장이 될 것 입니다.

박수 칠 때 떠났지만, 다시 까임의 최전방으로...
- 출처 : OSEN -

선수 은퇴 이후, K리그에서 지도자로서 새삶을 시작한 황선홍은 전남 드래곤즈에서 코치직을 수행하다 2008년 시즌부터 부산 아이파크 사령탑을 맡습니다. 
그가 부임하던 당시 부산의 분위기는 무척 어수선했습니다. 2007년에 앤디 에글리 감독이 갑작스럽게 사퇴하고 박성화 감독이 사령탐을 맡았지만, 박 감독이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감독을 빼앗기고 팀은 2006년 8위에서 13위로 내려 앉습니다.
이 상황에서 부임했지만, 황선홍 감독도(아울러 당시 영입된 안정환 선수도...) 팀을 금방 구제하지는 못했습니다. 전반기는 그야 말로 죽을 쒔고, 후반기에 반등을 쳤지만, 전반기 성적이 워낙 나빠서 12위로 시즌을 마감합니다.

2009년 시즌도 리그 12위였지만, 컵대회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문제는 결승전에서 발림.;;;) 2년 동안 정체하는 과정에서도 정성훈과 박희도를 성장시켰고, 계약 마지막 해인 2010년에 시즌 초반 6강에 오르고, FA컵 결승에 진출하는 등 상당한 선전을 하게 됩니다. 한 해 더 부산에 있었으면 또 어떤 성적을 거두었을 지 알 수 없지만, 부산 프론트에선 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결국 선수 시절 K리그 친정팀인 포항 사령탑으로 부임합니다.

당시 포항도 거물급 선수 영입없이 주춤거리는데다 설기현이 야반도주(...) 하면서 좀 어수선한 상태였습니다. 거기다 2011년 승부조작 사태가 터져 수비진이 붕괴하고 젊은 선수들도 삽을 퍼면서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 놓이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감독은 친정팀을 잘 조련하며 정규리그 2위에 랭크하면서 AFC출전권과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어 냅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에서 대략 조치 않은 상대를 만났습니다.

남자는 한방 아니겠나?
- 출처 : 스포츠 조선 -

황 감독의 포항은 울산에게 제대로 철퇴를 맞고 우승에서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2012년 시즌도 그랬지만, 황 감독은 미들을 중시하면서 쪼개가며 상대팀을 요리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이게 더럽게 단단한 수비력과 한방 역습을 가진 울산에겐 통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리그에서도 조마조마한 경기를 많이 한 젊은 선수들의 기량으로는 울산을 더욱 뚫을 수 없었죠.
결국 2012년을 기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김재성과 김형일이라는 미들과 수비의 양 축이 조국의 부름(...)을 받고 팀을 이탈하였고, 신이라 불린 사나이 모따도 브라질로 돌아가 버렸습니다.(거기다 철인 김기동마저 떠나고...) 물론 리그에서 이름값 있는 박성호와 김진용, 그리고 용병으로 지쿠와 조란을 영입했지만, 팀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유리몸 황카카(...)만으론 미들을 제대로 끌어갈 수 없었고, 기대했던 박성호와 고무열은 삽을 퍼는 일이 잦았습니다. 거기다 비싼돈 주고 사온 용병 조란은...;;;
까임이 늘어가는 도중에 수원에게 오대영을 먹이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지만, 이후 홈에서 패하면서 불안정한 상황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후반기에 들면서 성적은 반등을 쳤고, 상위 스플릿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12년 FA컵...
포항 홈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남과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후반기 들어 포항이 상승세였다곤 하지만, 경남의 문전을 지키는 사나이는 한국 골키퍼계의 전설 김병지였습니다. 포항과 헤어질 때 좀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병지 형님이었기에 포항이 골 넣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대로 이날 경기는 양팀이 치열하게 몸싸움을 주고 받으며 공방을 펼쳤습니다. 포항이 기회를 많이 잡기도 했지만, 경남도 만만찮았죠. 노병준의 전반 결정적인 슈팅은 병지 형님에게 막혔고, 경남 까이끼의 역습도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거나 골대에서 벗어나고 말았죠.
그렇게 0-0을 연장 후반 막판까지 이어가던 중에... 박성호 선수가 버저비터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 우승컵은 포항이 가져갔지요.

황선홍 감독은 감독이 된 후로 처음으로 우승컵을 차지합니다.
- 출처 : 스포츠 조선 -

고군분투를 하는 과정에서 FA우승을 하면서 감독 커리어에 한 줄을 쓰게 되었지만, 황선홍 감독 역시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감독으로서 도전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리그 우승도 한 번 해봐야 할 것이고, AFC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을 겁니다. 그리고 생각이 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국가대표팀 감독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황선홍과 홍명보 두 사람에 있어 2012년은 2002년과 더불어 기억할 만한 한해 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두 감독 모두 좋은 경력과 성적을 쌓으며 팬들에게 사랑받는 지도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덧글

  • 배둘레햄 2012/10/22 15:55 #

    맨 위의 짤은 슬램덩크의 명장면 중 하나인 강백호와 서태웅의 하이 파이브 를 떠올리게 하네요.
  • 초효 2012/10/22 15:57 #

    그러나 두 사람은 강백호와 서태웅과 달리 친했죠.
  • 홍차도둑 2012/10/22 16:51 #

    길게 답글 달아야 하걸 같은 부분이 있기에 트랙백 하겠습니다.
    참고로 첫 문단에 있는 '은퇴'는 국가대표 은퇴 라 해 주시는것이 정확합니다.

    두 분 다 선수 은퇴는 좀 오래뒤의 이야기입니다.
    뭐 더불어 이야기를 더 하게 된다면 우연이랄까요. 황선홍 선수의 선수로서 마지막 모임에 참석했고 그것도 '기록자'로서 간지라 이 이야기를 접하면 참 맘이 아직도 싱숭생숭합니다.
  • 초효 2012/10/22 17:18 #

    아, 고치겠습니다.
  • 유독성푸딩 2012/10/23 22:19 #

    두 선수 다 진짜 볼때마다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축구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로 남겠지요'ㅅ'...
  • 초효 2012/10/24 19:29 #

    저 두 사람과 비교될 콤비를 찾기도 참 힘들죠.
    구자철과 기성용이 그리 될 것 같기도 합니다만...^^;
  • 누군가의친구 2012/10/27 03:27 #

    우려와는 다르게 성공적인 활약을 보면 이후에도 감독으로써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 초효 2012/10/27 16:06 #

    두 감독 모두 앞으로 잘 하실 겁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21143
931
1622334

기갑마도사

대군주

백은의사자

일세영웅

화산검선

mousebl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