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최고 땡보지역 채널 제도 └세계사의 장

2차대전 시기, 유럽 전역에서 가장 한가하면서도 평화로운 곳이 있었으니 바로 영국 왕실령인 채널 제도입니다.
프랑스 본토에서 20km 남짓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섬은 전통적으로 중요 군사 거점으로 취급을 받았지요.

20세기 초에 찍혀진 채널 군도의 세인트 피터 요새
- 출처 : 모아진 플레툰 -

채널 제도는 건지 섬과 저지 섬을 비롯해 4개의 큰 섬과 자잘한 무인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 실제적으로 규모가 되는 섬은 건지와 저지에 불과하고, 이 섬들을 다 합쳐봤자 우리나라 진도나 거제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작지만 나폴레옹 전쟁때만 해도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던 이곳은 전함이 바다를 주름잡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한 20세기부터는 군사적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영국과 프랑스가 군사적인 동맹관계로 가면서 그 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졌지요. 1차 대전때는 일부 경비병력이 주둔하는 정도였습니다.

1940년 6월 당시에 이 섬에는 1700여명의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쓸만한 중화기라고 해봤자 기관총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영국은 덩케르트 철수 당시에 이 섬을 일부 병력을 철수시키는 주둔지로 써먹고 독일군이 무섭게 러쉬해오자 6월 20일, 모든 병력과 군수물자를 철수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영국군이 순순하게 물러날 거라 생각하지 못한 독일군은 폭격기로 채널 제도를 폭격했고, 그 와중에 애꿎은 민간인만 40명 넘게 죽었다고 하네요.

스탈린 그라드에 징징거릴 만큼 상징적인 데 많은 관심을 둔 히틀러는 영국 왕실령인 이 섬이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1개 보병대대가 파견되었던 이 섬에 사단 규모의 병력이 주둔하기 시작지요.

땡보 지역으로 떠나는 병사들의 해밝은 미소.
그러나 이들은 얼마 후 동부전선으로 차출되었다는...
- 출처 : 모아진 플레툰 -

이들 보병 사단 외에도 그루지아 인으로 구성된 동방부대 1개 대대가 주둔하였고, 슈투카나 대공포와 같은 항공 전력과 해군까지 이 작은 섬에 왁자지껄하게 모여들었습니다. 영국이 자기네 자존심인 이 섬을 반드시 탈환하려 들 테니까 이 정도는 주둔해야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이 섬을 교두보로 영국 본토 공략을 할 생각도 있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영국 침공에 실패하고, 동부전선의 상황도 대략 좋지 않게 진행되자 이 섬은 때 아닌 공구리 특수를 겪게 됩니다. 대서양 방벽의 일환으로 완전히 요새화 해버린 것이죠. 그래서 총 26000여명의 병력과 16000여명의 노무자들이 이 작은 섬에 공구리질을 하며 요새화 했고, 패전한 프랑스의 전차나 해군 전함의 함포 등을 각지에 배치시켰습니다.
이 당시 독일이 이 섬에 투입한 공구리나 무기의 양을 다른 대서양 연안 지역에 비교하면 너무나 지나친 수준이었습니다.

이 콩알 만한 섬을 지키겠다고 대서양 방벽에 들어간 물자의 10%를 투입했습니다.
- 출처 : http://www.easyvoyage.co.uk -

결과적으로 히틀러는 이 작은 섬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한 덕분에 노르망디에서 털리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여기 병력 빼서 프랑스에 고고씽 중인 연합군을 막아냅시다'라는 롬멜의 제안을 씹었다고 하네요. 역시 적은 내부에...
히틀러는 전황이 극히 불리해지던 1945년 3월에서도 '향후 반격을 생각해서라도 채널의 주둔군은 유지되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군 장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섬에 조금이라도 젊은 병사들은 빼내고 30후반에서 40대의 노땅병사들을 집어넣는 게 고작이었다네요.

아무튼 이렇게 투자를 했음에 불구하고, 이 섬의 주둔한 독일군들은 연합군의 개때러쉬에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캐나다 부대라고 불렀다네요. 연합군이 오면 몽땅 포로로 잡혀서 캐나다로 갈 거라는 자조적인 입장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그러나 정작 연합군도 생까버렸고, 포위가 된 상태에서 물자공급이 끊기면서 주둔군과 섬 주민들은 기아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적십자에서 구호물자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아예 전멸했을 거라고 하네요.

이렇게 비실거리다가 1945년 5월에 비로소 전쟁이 끝나 이 섬의 독일군들도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일군에겐 땡보였다고 하고, 주민들을 비교적 신사적으로 대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독일군 입장에서 그런 것이고, 정작 주민들 입장에선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폭격으로 희생된 주민들도 있었고, 영국 본토 출신 중에 1200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독일로 끌려가기도 했었으니까요.

과거의 삽질은 오늘날에 좋은 돈벌이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 출처 : http://mirror.enha.kr -

현재 채널 제도는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똥고집 때문에 만들어진 저런 전쟁 유산들도 2차대전 덕후들에게 나름의 볼거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덧글

  • 캐안습 2013/01/02 16:22 #

    아우슈비츠에서 발견된 파운드화폐의 주인이 채널제도에서 끌려와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대인이었다죠.
  • 초효 2013/01/02 16:24 #

    아, 거기서도 유태인들이 잡혀서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기록이 있더라고요.
  • 효우도 2013/01/02 17:00 #

    근데 연합군은 왜 포로를 캐나다로 보냈나요?
  • 초효 2013/01/02 17:15 #

    캐나다에 영국이 운영하는 포로수용소가 있었습니다.(호주나 본토에도 있었지만) 여기서 독일군 포로들이 한딱가리 무쌍(...)을 찍은 일도 있었는데 영화로도 만들어졌었죠.
  • 2013/01/02 18:2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02 22: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shift 2013/01/02 18:54 #

    이건 뭐 도움 될 섬같지도 않은데 영국앞에 깔짝이는 섬도 아니고
  • 초효 2013/01/02 22:11 #

    대영제국이 자존심을 지킬 것이라 예상했으나...
  • 대공 2013/01/02 21:01 #

    주적은 휘둘러 어휴
  • 초효 2013/01/02 22:12 #

    무능하고 신념이 넘치는 지도자는 누구보다 무섭죠.
  • 셔먼 2013/01/02 22:49 #

    히틀러 그놈 때문에 민간인 여럿 죽었죠...
  • 초효 2013/01/03 15:06 #

    여럿이라고 말할 정도가 아니지요.
  • 명림어수 2013/01/03 00:40 #

    니콜 키드만 주연 공포영화 "디 아더스"의 배경이 챈널군도의 져지섬이죠.
    영화 전체에 그쪽 주민들의 좌절이 반영되어있죠.
  • 초효 2013/01/03 15:06 #

    디 아더스는 안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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